#죽는게뭐라고
#사노요코
#시크한_독거_작가의_죽음_철학
[100만 번 산 고양이]라고 아이들 그림책이 있다.
그 책을 읽고 이게 뭐지?
애들 책인데 깊다 싶었는데, 그 책이 사노요코씨 책이었다.
그 책에서도 고양이는 자신의 죽음에 시크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고양이의 죽음에는 시크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자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사노요코씨는 죽음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말버릇 처럼 정해진 날 보다 오래 살아 버리면 큰일이라고 했다. 돈을 다 써 버렸기 때문이라고.
죽음도 이렇게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구나 싶었다.
미쳐버리면 주변에 사람이 싹 사라지지만, 죽음을 선고 받고 나면 사람들이 잘해준다고, 정신병보다 죽을 병이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책은 죽어가는 자신을 관찰한 수기이다.
죽음은 누구에게 배울 수 없는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므로 관찰일지를 쓰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작가의 죽음 답기도하고 그런 영역까지 상업화 해버리는 건가 싶어 일본인 스럽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었다.
어쨌던 누구에겐가 경험담을 듣고 배울 수 있다면 좀 더 죽음을 대하는 마음이 평온할 것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했다.
사람은 죽기 전 까지는 살아있다. 죽음을 선고 받았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p20 사실 근본이 가난뱅이인 나는 물욕이없다.
식욕도 없다.
성욕도 없다.
더 이상 물건이 늘어나도 곤란하다.
이제 남자도 지긋지긋하다. 나이 일흔에 남자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앞으로 남자를 사귈 수나 있나? 아뇨. 못 사귑니다만.
p52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가운데서 어떻게 인간의 품격을 지켜나가야 할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모모 언니의 세대도 머지않아 사라질 테지.
가난해도 좋다. 나는 품격과 긍지를 지닌 채 죽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p56집에 있을 때는 민머리를 드러내놓고 다녔다. 민둥산이 된 이후에야 내 두상이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19 저도 죽음에 다가서고 있고, 이게 첫 경험이니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요.
p176그러나 지금 내 눈에 비친 산의 단풍은 어딘가 이상했다. 고흐의 그림 속 빛나는 터치는 그가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눈에 보였던 광경이 아닌가. 정신병으로 세상을 뜬 고흐는 죽음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그처럼 불타듯 보였던 게 아닌가.
p199 자신의 죽음에는 초연하지만 흰 고양이의 죽음에는 100만번이나 울 정도의 슬픔을 느끼는 호랑무늬 고양이는 사노 요코와 무척 닮았다. 타자에게 애정을 양껏 쏟아부은 뒤 다시는 태어나지 않은 그 고양이처럼, 어쩌면 사노요코 또한 전 생애에 걸쳐 그녀가 가진 사랑을 모조리 쏟아부었기에 생에 대한 미련 없이 초연히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책의 서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로 시작되니, 그녀에게 자신의 죽음은 '이별'이 아닌 '재회'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