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2019. 2. 3. 10:50

#이방인
#알베르카뮈
#김화영
#민음사

쭉쭉 읽다가 갑자기 끝남.
뭐지? 어리둥절 했음.
처음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상태가 나와 좀 닮았다 생각하면서 읽음.
그런데 뒤로 갈 수록 아랍인을 죽이고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소설 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동정을 느낄 수 없음.(하긴 형사제판에서의 초점이 피고인의 범죄 사실에만 맞춰 있긴 하지)
다만 주인공의 삶을 관통하는 이방인 스러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 인상을 줬음.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도 미적지근한 감정으로 참여하고, 여자친구의 청혼에도 사랑하지 않지만 승낙하고, 아랍인을 쐈을 때도 별 감정없이 해치우고, 특히 이방인성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재판정에서 인듯.
자신의 재판이지만 제 삼자로 물러나서 진행됨.
해설을 읽으니 그는 너무나 솔직하기 때문에 이방인이라고 함.
좀 유연하게 상황에 맞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별로 할말이 없으므로 하지 않는 자기변호에 소홀한 모습을 보임.

작가가 사형(기요틴) 폐지의 선봉에 선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 소설은 사법제도의 불합리성을 꼬집고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좀 이상했던 점은
백인인 주인공이 아랍인을 죽였는데도 사형선고를 받은 점이랑 (당시 아랍인은 식민지 시민이었다)
사건과 전혀 연관이 없이 보이는 주인공 모친 장례식과 연결해서 재판이 진행된 점이 이상함.

p161 따지고 보면 인간 세계에서는 정의(재판)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 저으이는 필연적으로 그러한 외관들만을 보고서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의는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거짓되고 억지이며 왜곡된 것입니다.

p161 사방에서 꼬리표를 달려고 덤벼들고 천편일률적인 공식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관습에 따라 단죄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어떤 기나긴 재판입니다.

p162 그가 파멸하게 되는 것은 웅변적인 수사를, 어떤 유의 언어상의 낭만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p178 이리하여 새로운 소설 [이방인]은 중성적인 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가로놓인 "침묵", 심리 분석이나 설명을 피하고 오직 겉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대상들만을 묘사하고 지시하는 고집스러운 태도, 일견 순진해 보이는 구어체의 단순과거 등을 통하여 "겉보기에 아무 의식이 없는 한 인간" 특유의 무심한 모습을 가장 적게 말하면서 암시적으로 그려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p206 이 죽음은 소설의 1부와 2부 사이의 대칭 관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라는 점에서는 다른 두 가지 죽음과 동일한 기능을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두 죽음과 다르다. 우리는 재판 과정이나 감옥에 갇힌 뫼르소의 의식 속에서 살해당한 아랍인이나 그의 가족들은 거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의 전 공간을 굽어보는 듯한 화자의 시야 속에서 이 아랍인은 충분한 인격체로 형상화 되지 못하고 있다.
중략
왜 뫼르소의 행동이 그 가해행위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충분히 항변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알제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인 아랍인을 '우연히' 살해하게 된 백인 뫼르소에 대하여 사형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도 당시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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